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참판공

참판공(參判公)

박동형전신.png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박동형상반신.png

 

 

 

 

 

 

東亨의 初名은 獜徵, 字는 秀夫, 號는 巒村 笑臥堂이다. 肅宗 21 1695 7 初三日生으로 陶菴 門下에서 修學하다. 英祖4 17283 戊申亂(李麟佐의 )當時 反亂 主動者 하나인 朴弼顯 父子를 捕獲한 功으로 揚武( 奮武)功臣 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 忠原君을 封하고, 英祖8 光陽順天府使를 除授하다. 英祖15 1739213 享年45歲로 , 正憲大夫 禮曹判書兼 知義禁府事 五衛都摠府都摠管을 贈職하다. 墓는 尙州市 靑里面 月老里 382-2 巽坐이고, 巒村年譜 巒村稿3, 行蹟1 多數의 典籍이 있다.

 

보물 제1927호 박동형 초상 및 함은 1728년에 그려진 박동형의 '전신좌상본' 및 1751년에 그려진 '반신상본'과 각 함(함)이다. 박동형(1695-1739)은 무신란 당시 반란 주동자 중 하나인 박필현 포획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며 공신 반열에 올라 충주박씨 가문을 공신 가문으로 격상시킨 인물이다.

 

두 초상은 동일 초본에서 비롯한 것으로 전신좌상은 유소(매듭장식)를 비롯해 옛 장황(서화의 표지 장식)을 간직한 상태이고 반신상은 최근 장황을 새로이 바꾼 점에서 차이를 보이며, 초상들의 보관함은 최근 장황을 새로이 바꾼점에서 차이를 보이며, 초상들의 보관함은 처음 초상 제작때 것으로 보인다.

 

오사모(관복을 입을 때 쓰는 모자)에 단령, 소매안으로 처리한 두 손, 배경 없이 교의에 앉아 있는 전신좌상, 쌍학흉배와 학정금대, 표피가 덮인 교의, 족좌위에 노인 두발 등 일반 공신상의 전형적인 형태로 그린 화가의 기량을 알려 주는 섬세한 필치에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.

 

 

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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